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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님께서 모든 진리를 깨달으신 뒤 우주의 중생들에게 그 진리를 가르친 것이 불교란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예수교 곧 기독교, 공자의 가르침을 유교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말이다.

불교는 하늘을 신격화한 절대적인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 종교와는 그 의미가 근본 적으로 다르다.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주재하여 모든 것을 지배하지만 부처님은 우주 만물의 본체로서 천지는 물론 대우주의 모든 것을 생성하고 소멸하는 법신(法身) 그 자체이다. 곧 우주가 이루어지고(成), 머무르고 (住), 무너져서 (壞), 없어지는(空) 과정을 되풀이하는 진리 그 본체이다.

불교는 절대자인 유일신인 물론 그 어떤 신도 다 포용한다. 부처님은 대 우주의 본체인 진리의 몸 곧 법신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대 우주를 생성 변화시키는 그 근본은 우리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불교의 입장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무엇보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며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기초하며 합리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불교의 교조로 석가 석존등으로 약칭한다.
기원전 623년 중인도 가비라국 성주 정반왕의 아들로 룸비니 동산 무우수 아래에서 탄생하였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걸음을 걸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석가모니불 자신의 위대함과 아울러 모든 생명이 지니고 있는 본질인 진아(眞我)에 대한 절대가치를 주장한 것이다.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부인이 죽자 이모인 마하파사파제의 손에 의해 양육되었다. 어릴 때 이름은 싯달타이며 과학 문학 4베다등 온갖 학문을 다 배우고 무예를 연마하여 전륜성왕의 도리를 익혔다. 19세에 선각왕의 딸 야소다라를 맞아 결혼하여 라훌라를 낳았다. 그러나 성문 밖 나들이에서 생(生) 노(老) 병(病) 사(死)의 괴로움을 보고 출가를 결심, 동쪽의 람마성 밖 숲속에서 속복을 벗어 버리고 출가했다.

그 뒤 남쪽으로 내려가 비야리, 마갈타에서 아람가람 발가파 울다라등의 선인(仙)을 만나 배움을 얻고 6년간 고행하였다. 그러나 금욕만으로는 깨달음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붓다가야의 보리수아래 앉아깊은 사색에 잠긴지 7일만에 드디어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님이 되니 그의 나이 35세였다.

녹야원에서 교진여 등 다섯 비구를 위해 첫 법륜(法輪)을 굴리신 이후 가섭 3형제 사리불 목건련 등을 교화하여 교단을 조직하고 깨달음의 내용을 전하였다. 그리고 가비라국으로 돌아와 부왕을 비롯하여 친족들을 제도하는 한편 빔비사라 비사익 아사세등 여러나라의 왕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기원전 544년 2월 15일 북방의 쿠시나가라성밖의 발제하 강변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편 후 조용히 열반을 들었다. 세수 80세이고 십대제자를 비롯하여 1,250여명의 많은 제자를 두었으며 그의 가르침의 내용은 열반에 이른 뒤 수차례에 걸쳐 편찬되었다.



불교에는 중생의 능력이나 근기에 맞는 다양한 수행법이 있다. 염불이란 일반적으로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주위에서 '나무관세음 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등 부처님을 부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께 귀의하고 모든 것을 부처님의 뜻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염불이다. 염불에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생가하는 법신염불과 부처님의 공덕이나 모습을 마음에 그려보는 관상염불 그리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 염불이 있다.

≪아함경≫에서는 세가지, 여섯가지, 열 가지로 염불의 종류를 구분하고 있다. 즉 염불을 지극정성으로 하면 번뇌가 사라져 극락에 태어나거나 열반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대승경전에서는 삼매에 들어 염불하는 염불삼매를 설한다. 이에 따르면 염불은 죄를 없애고 삼매 중에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은 물론,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길 발원하면 반드시 태어난다고 한다.

염불은 쉽게 행할 수 있는 수행법으로써 대중의 호응이 높았다. 어려운 교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반 대중이 선호한다. 신라 시대의 원효스님이 무애박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지성으로 부르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치신 이래 염불은 지금까지 불교인의 수행법의 대명사가 되었다.
염불하는 방법은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 지극히 부르는 것이다. 즉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하며 살기를 발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염불을 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해져 입으로는 염불을 하면서 속으로는 외도, 마군, 잡생각을 하게 된다. 부처님을 부르는 동작 하나에도 정신을 모아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가 진정한 염불이다. 지극정성으로 염불해서 부처님을 친견했다는 사람도 있고, 몸에서 빛을 발하는 방광을 얻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보다 진심으로 부처님을 그리워 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사심이나 탐욕이 사라지는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의 수행법하면 누구나 참선을 떠올린다. 참선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참선이란 말에서 '참(參)'은 생각함을 뜻하고 '선(禪)'은 산스크리트어 디야나(dhyana)를 음사하면서 나온 말인데 뜻은 역시 '사유함'이다. 그래서 옛 문헌에서는 사유수로 번역하였다. 따라서 참선이란 '깊이 사유함'이라 정의할 수 있다.


1) 참선의 자세

참선의 자세는 전통 수행법인 결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좋다.
① 주위를 정리 정돈한 다음 좌복(방석)을 깔고 그 자리에 편하게 앉는다.
② 앉는 자세는 먼저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반가부좌)
③ 남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허벅지위에 올린다(결가부좌)
④ 허리와 양어깨는 편한 상태로 쭉 펴고 두손은 먼저 왼손등을 오른손 위에 포개어 올려놓고 엄지와 엄지를 살짝 마주닿게 한다.

참선을 할 때는 호흡이 중요하다.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하고 거친 숨을 몰아 쉰 다음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코로 숨을 들여 마셨다가 내 쉰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코로 숨을 쉬되 콧구멍의 미세한 털도 움직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호흡은 아랫배 즉, 단전까지 내려보냈다가 천천히 내쉬는 방법으로 계속 하면 된다.



2) 수식관 (數息觀)

참선을 하다보면 여러 생각이 끊임없이 생겼다가 소멸한다. 정말 한 생각에 몰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호흡을 관찰하며 공부하는 법이 나왔을 때 이를 수식관이라 한다. 이 수행은 숨을 들이쉬면서 들숨을 관찰하고, 숨을 내쉬면서 나간 숨을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이 때 호흡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천천히 깊게 숨쉬기를 한다.
숨쉬기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지만 숨에 의식을 집중하고 살아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긴장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있을 때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쉴 때 마음의 긴장과 불안이 어느새 풀어진다. 이러한 긴장이완 효과뿐만 아니라 수식관은 분별심을 없애는 수행법이다.



3) 부정관 (不淨觀)

부정관이란 말 그대로 우리 몸의 부정한 모습을 보는 것을 말한다. 그 방법은 이렇다.
묘지로 가서 시체(해골)의 부정한 모습을 보고 거처로 돌아와서 발을 씻고 편안히 앉아 마음과 몸을 유연하게 가지고 모든 번뇌를 떠나 그 시체와 나의 몸을 비교하며 관한다. 즉, 마음을 집중하여 발목, 정강이, 넓적다리뼈, 허리뼈, 등뼈, 옆가슴뼈, 손뼈, 어깨뼈, 목뼈, 턱뼈, 이빨, 해골등에 마음을 집중한다. 또는 마음을 미간에 둔다. 한 방안, 한 집안, 한 가람, 한 고을, 한 나라에 가득히 썩어가는 시체가 있는 것을 관한다.
이 부정과 탐욕과 애욕이 많은 사람들이기 인생이 무상함을 깨우쳐 탐욕과 애욕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행법이다.



4) 지관과 삼매 (止觀과 三昧)

지(止)는 마음이 적정하여 온갖 번뇌를 그침을 말한다. 수행을 하면서 마음이 여러가지고 흔들려 정신의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혜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 망상의 흔들림을 보고 이들이 모두 찰나에 변화하는 무상한 것임을 일고 멈추게 하는 작업이 지(止)라고 한다.
관(觀)은 산스크리트어 비파사나의 의역으로 마음이 지의 상태에 이르면 자신의 마음속에 왔다갔다 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스스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게 되면 현상의 세계에서 쉽게 끌려가던 마음 씀씀이를 보게 된다. 마음을 보게 되면 현상의 세계에서 쉽게 끌려가던 마음의 씀씀이를 보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동안 무엇에 마음이 흔들리고 욕심을 무리고 조급해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러한 앎은 자신을 지혜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삼매(三昧)는 지관의 상태에서 자신의 마음을 보는 지혜가 깊어져서 외부의 어떠한 소리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고자 마음이 몰입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참선삼매,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삼매에 들었다고 말하고 또는 무아지경에 빠졌다고 한다. 흔히 독서에 몰입한 사람을 보고 독서삼매에 빠졌다고 말하는 예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겠다. 이러한 경지에서만이 최상의 지혜인 무분별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식에는 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절은 삼보(불 법 승)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下心)의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절은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수행방법이기도 한데, 참회나 기도의 방법으로 108배, 1080배, 3000배등이 활용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절을 많이 하면 아름다움과 건강을 유지하고, 남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으며 스스로 두려움이 없어지고 부처님께서 항상 보호해 주시며, 훌륭한 위엄을 갖추게 되고,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주며, 죽어서는 극락에 태어나고 마침내는 깨달음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삼보님께 하는 절은 오체투지의 큰절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 오체란 몸의 다섯부분인 왼쪽 팔꿈치, 오른쪽 팔꿈치(양 팔꿈치), 왼쪽 무릎, 오른쪽 무릎(양 무릎), 이마를 말한다.
이것은 인도의 예절로 몸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하는 절인데 인도에서는 접족례라 하여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하면서 공경하는 사람의 발을 두 손으로 떠 받들었다고 한다.

오체투지의 절은 우리나라 재래예법인 큰절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되 반드시 몸의 다섯부분이 땅에 닿아야 한다. 이와 같은 오체투지의 예를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동작으로서 가장 경건한 예법이다.




1) 부처님 오신날

음력 4월8일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이다. 이 날은 전국의 사찰에서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며 법요식을 봉행한다. 법요식 중 욕불의식이 있는데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을 축복하여 향탕수로 목욕시키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아기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홉마리 용이 공중에서 향기로운 물을 솟아나게 하여 신체를 목욕 시켰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 날은 부처님전에 등을 밝히는데, 인간과 더불어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선언하시고 온 세상의 고통을 구원하고자 서원하신 부처님의 높은 뜻을 기리며 사바세계에 나투신 크나큰 인연을 경축하는 의미이다.
연등회는 부처님 당시에 빔비사라왕이 불전에 1만등을 켜서 공양한 예가 있고, 가난한 여인이 한등을 켜서 1만등을 능가하는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는데서 유래한다.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듯이 등을 켜는 이유도 가정과 사회, 세계를 밝히겠다는 서원 의 발로인 것이다. 이 연등법회는 ≪삼국유사≫에 초파일부터 보름까지 경주의 남녀가 다투어 탑돌이를 한 기록에서 전통문화 행사로 치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2) 출가하신날 - 출가절

음력 2월8일은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날이다. 모든 중생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건지시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 출가하신 날로서, 불자들은 부처님을 본받아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3) 깨달음을 이루신날 - 성도절

음력 12월 8일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날이다. 이 날을 기념하여 선방의 수행자들은 일주일간 철야 용맹정진을 하며, 일반 사찰에서도 발심 정진하는 철야 법회를 갖는다. 부처님께서 행하신 수행을 본받아 불자들은 부처님처럼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어 일체중생을 교화하고 불국정토를 건설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4) 열반에 드신날 - 열반절

음력 2월 15일은 부처님께서 일체의 번뇌를 끊어 열반에 드신 날이다. 부처님의 열반은 이 세상의 모든 번뇌를 확실히 끊었다는 점에서 반열반 이라고도 한다. 즉,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교화하시던 시기는 인연의 꺼풀인 육체를 지니신 단계이지만, 그 꺼풀조차 벋었다는 점에서 깨달음의 큰 완성으로 보는 것이다. 불자들 또한 몸을 바르게 하고 노여움을 참고 악심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를 성취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기념법회를 가진다.


5) 우란분절 - 백중

음력 7월 15일을 여름안거 해제일이며 백중날이다. 백중(白衆)은 과일과 음식등 백가지를 공양한 백종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선방에서는 하안거동안 정진하면서 생긴 스스로의 허물을 대중앞에 사뢰고 참회하는 자자(自恣)를 행하며, 불자들은 선망 부모를 천도하는 우란분절법회를 가진다.
이 우란분절법회는 안거수행 대중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행에서 비롯되었다. 목련존자가 신통력을 얻은 후 천안으로 어머니를 찾아보았더니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구제할 방법을 부처님께 여쭈었더니 그때에 부처님께서 지금 살아있는 부모나 7대의 선망부모를 위하여 하안거 해제일에 음식, 의복, 등촉, 평상등을 갖추어 시방의 고승대덕들에게 공양하던 그 공덕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며 그대로 행한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에도 음력 4월 초파일과 백중을 일년중 가장 큰 행사로 여겼다.
민간에서는 이 날이 고된 농사를 끝내고 벌이는 칠월의 세시 명절이다. 세벌김 매기인 만두레를 끝낸 다음 벌이는 농민 및 머슴들의 대동굿으로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최대 축제일이었다. 불자들은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이나 햇곡식을 들고 절을 찾아 스님들께 공양하거나 조상천도를 위한 기도를 한다.


6) 그 밖의 명절의례

불교가 이 땅에 전래된지 1,600여년이 넘었다. 그 기간동안 불교는 민족과 영욕을 함께 해왔으며 민속의 많은 부분을 불교의식속에 받아 들였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전통민족과 불교 행사가 서로 구별되지 않을 정도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민속 명절을 하나의 의례로 정리하여 지켜가고 있다.
정월에 사찰에서는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여러가지 행사를 했다. 즉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온 장승이나 서낭당 당산거목, 국사당의 제사에 참여하거나, 절 입구의 서낭이나 장승 앞에서 원앙재(연말), 성황재(연초)를 지내 질병을 막고 절의 융성을 기원하기도 했다. 또는 신년 첫 법회를 사찰의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이 함께 지내며 일년의 평안을 발원하기도 한다. 이 법회를 통알 또는 세알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하여 삼보와 호법신중, 그리고 인연있는 일체 대중에게 세배드리는 의식이다.
2월에는 연등놀이가 유명했으나 요즈음 4월 초파일 연등행사로 바뀌었다. 등은 각종 동식물의 형상을 떠서 만든 것 이외에도 일월등, 종등, 묵등, 칠성등, 모행등 등의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이 연등행사를 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될 정도로 장엄했다고 한다.

 

◆ 매년 입춘이 드는 날 - 입춘기도

입춘 기도의 진정한 의미
새해 새봄 새출발을 부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불자로서 당연한 자세라 하겠습니다. 더구나 묵은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봄기운으로 단장하는 의식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입춘의 기도이며 불공입니다. 여기에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도 소망의 성취를 위해 춘첩을 써붙이는데 종교의 세계에서 그런 풍성한 ‘꺼리’가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입춘의 ‘부작’입니다. 민중의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소망을 종교적으로 담아내어 그들의 욕구에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지요. 불경의 말씀과 중생의 소망을 적은 부작, 부리부리한 눈과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매[鷹]의 머리가 3개나 되는 매 부작도 있습니다. 중생의 소망을 담은 부작을 정성껏 준비하여 기도와 불공을 올리고 집에 붙이면 어찌 호법 성중의 가호가 없겠습니까.

그러나 입춘이 진정한 불자의 재일(齋日)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개인적인 기복의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새봄을 맞을 수 있도록 보살다운 큰 마음[大心]을 내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봄소식을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소년 소녀 가장이며, 사회 복지 시설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이며, 교정 시설에서 참회의 삶을 사는 재소자들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불자답게 입춘을 맞이하려면 불공 기도와 함께 어려운 이웃들과 ‘모두 함께 나누는’ ‘회향’의 실천을 하여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부작과 함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부작은 이러한 회향의 적극적 실천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 음력 7월 7일 - 칠석날

이날은 북두칠성 전에 기도를 드리는 날이다. 북두칠성은 불교가 이 나라에 들어오기 훨씬 오래 전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어온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한인들이 외계에서 날아온 사람들이라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우리의 조상은 북두칠성의 어느 별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환웅천황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도 가만히 음미를 해보면 외계에서 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장독대에 물을 떠놓고서 칠성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러한 것이 아마도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하튼 한민족이 하늘에 관심이 많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므로 나쁠 것은 없다고 본다.

◆ 동지가 드는 날 - 동지(冬至)

동지는 절기 상으로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려고 움직이는 시기라는 말도 있는데,절에서는 동지불공을 드린다. 그 이유는 한 해의 무사한 삶에 대한 감사와 다시 새로운 시작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민가에서도 이 날은 팥죽을 끓여서 잡귀를 몰아내고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삼고 있는 것을 보면 승속(僧俗) 간에 이 날은 행운을 비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매월 행사일

● 음력 매월 1일 - 초하루 법회일

대개의 사찰에서는 음력으로 매월 초하루를 정기 법회일로 정해 놓고서 불공과 기도를 하고 있다. 특별히 초하루라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새롭게 시작을 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무사히 한 달을 살고 싶다는 염원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시작이 된 것으로 본다. 다만 깊은 산중의 절에서는 아무래도 교통편 등이 문제가 되므로 일일이 법회를 보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가능하면 정해놓고 다니는 절이 없는 경우라도 이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겠다.

● 음력 매월 8일 - 약사재일

약사(藥師) 재일은 약사여래불께 기도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된다. 약사여래불이라고 하면 동방(東方)의 만월세계(滿月世界)에서 중생의 심신에 얽혀있는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는 부처님이다. 의외로 한국에서는 약사여래불에 대한 신앙이 강한지 몰라도 여하튼 팔공산(八公山)의 갓바위(冠峰)에 있는 약사여래불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스타에 속하는 것을 보면 우연만도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 음력 매월 18일 - 지장재일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명부(저승)에서 영혼들을 자유롭게 해 주신다는 보살이다. 이 보살게 기도를 하는 날은 매월 18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날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다.

● 음력 매월 24일 - 관음재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께 기도를 드리는 날이 이 날이다. 관음 신앙은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당연히 매월 24일을 관음 재일이라고 이름하여 기도를 하는 날로 정했던가 보다. 그리고 많은 절에서도 이 날을 기도일로 정하고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본다.

 

석가모니의 무재칠시

 

어떤이가 석가모니를 찾아가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하는 일 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이 무슨 이유입니까 "

"그것은 네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입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어야 주지 뭘 준단 말입니까 "

"그렇지 않느니라. 아무 재산이 없더라도 줄 수 있는 일곱 가지는 있는 것이다."

 

첫째는 화안시(和顔施)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것이요

둘째는 언시(言施) 말로서 얼마든지 베출 수 있으니 사랑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격려의 말, 부드러운 말 등이다.

셋째는 심시(心施)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이다.

넷째는 안시(眼施)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으로 베푸는 것이요

다섯째는 신시(身施) 몸으로 때우는 것으로 남의 짐을 들어준다거나 일을 도우는 것이요

여섯째는 좌시(座施) 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찰시(察施)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속을 헤아려서 도와주는 것이다.

 

"네가 이 일곱 가지를 행하여 습관이 붙으면 너에게 행운이 따르리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무재칠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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